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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스님 금강경대강좌산림 제1회

金剛經大講座산림(청담스님) 


제1회


#법회산림---(法會山林).

 

불경(佛經)을 강의하는 것을 절에 가면 산림(山林)한다 그럽니다. 이 말은 파인아산(破人我山)하고 양공덕림(養功德林)한다고 하는 글귀의 끝자 둘을 합해서 만든 말입니다. 너니() 나니() 하고 집착(執着)하는 착각(錯覺)을 두드려 부수는 것이 불교 공부하는 것이고, 태산(泰山)처럼 높은 <>라는 감정을 앞세우는 아상(我相) . 인상(人相)을 없애는 말씀을 한 것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므로 파안아산(破人我山 )한다는 뫼산자()를 떼어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아상 . 인상만 부수는 것이 아니고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도 두드려 부수는 것이니, 결국 말은 <인아산>(人我山)이라 했지만 뜻은 아상산(我相山) . 인상산(人相山) . 중생상산(衆生相山) . 수자상산(壽者相山)을 다 부수어 없앤다는 말로 봐야 합니다. <아상>은 몸뚱이를 <>라고 생각하고 생각을 <>라는 고집이며 <인상><>에 대한 상대적인 존재, 곧 남을 뜻하며 객관을 뜻합니다. <중생상>은 살림살이 하는 것, 좀 잘 살아보자 남과같이 살아보자는 생각이며, <수자상>은 이 몸뚱이로 타고난 백년 목숨을 살리려 하고 좀 더 오래 살려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사상(四相)이라고 하는데 역시 금강경의 중요한 사상(思想)입니다. 상만 끊어지면 보살의 지위에 나갈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상에 대해서는 본문을 공부할 때에 많이 나오게 되므로 자세한 설명은 뒤로 미루기로 합시다.

 

수풀림()자를 쓴 것은 숲은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고 재목이나 화목(火木)으로도 쓰고 과일도 있고 온갖 짐승들이 길들고 또 무성(茂盛)하는 것을 뜻하며 사람에게 덕()을 끼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뜻으로 양공덕림(養功德林)이라 했는데 그 끝자인 임()자를 따서 산림(山林)이라 한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랗게 설법(說法)을 하고 법문(法門)을 듣고하는 것은 모두 산림를 시작한 것이며, 인아산(人我山)을 부수고 불보살님과 같은 완전한 인격을 성취하는 공덕의 숲을 기르는 사업이 됩니다.

 


金剛經大講座(금강경대강좌)

 

 

法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여시아문)하오니 一時(일시)()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하사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으로 ()러시니 爾時(이시)世尊(세존)食時(식시)着衣持鉢(착의지발)하시고 入舍衛大城(입사위대성)하사 乞食(걸식)하시되 於其城中(어기성중)次第乞已(차제걸이)하시고 還至本處(환지본처)하사 飯食訖(반사흘)하시고 收衣鉢(수의발)하시며 洗足已(세족이)하시고 敷座而坐(부좌이좌)하시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기수급고독원>이란 절에서 천 이백 오십인과 함께 계시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진지 잡수실 때가 되어, 가사 입으시고 바리 들으시고 사위 서울에 들어가시와 성 안에서 차례대로 비시었다. 그리고 절로 돌아오셔서 진지 잡수시고는 가사와 바리를 거두시고 발 씻으신 뒤 자리 펴고 앉으시었다.

 

第一 法會因由分---법회가 열린 인연

[科 解]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은 이 금강경을 부처님께서 설법(說法)하시게 된 동기(動機)를 아란존자(阿難尊者)께서 설명하신 대문(大文)입니다. 법회가 열리게 된 인유라 하여 법회인유(法會因由)라 했고, 과목(課目) 장절(章節)이란 뜻으로 분()이라 했고, 제일장(第一章) 또는 제일과(第一課)란 뜻으로 제일(第一)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사이 말로 고치면 [제일장 법회가 열리게 된 인연]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은 어느 경이거나 대개 삼분(三分)으로 나누어 그 뜻을 이해합니다. 처음이 서분(序分)이고 다음은 정종분(正宗分) 마지막은 유통분(流通分)이라 합니다. 서분은 서론이란 뜻이고 정종분은 본론이란 뜻이며 유통분은 결론과 아울러 후세에 길이 전해져서 인류사회에 큰 이익이 되도록 널리 펴라고 당부하신 대문입니다. 이 가운데 서분은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문이 아니고 정종분과 유통분만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유통분 가운데도 [맨 끝에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고 나니 누구누구가 어떻게 듣고 기뻐하며 받아 지니었다(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乃諸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尼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皆大歡喜信受奉行)하는 이 경문(經文)도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역시 아란존자의 말씀입니다.

경문의 내용을 장절(章節)로 나누는 것을 과목(科目) . 과판(科判)이라 하는데, 중국 위나라 때 위제(魏帝)가 대덕법사(大德法師)들을 초청하여 경 강의하는 것을 듣고 묻기를 [ 공자의 유교나 노자의 도교는 경문(經文)에 장단(章段)이 있는데 불경에는 왜 과단(科段)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대덕(大德) 스님 네가 경문에 과목 나누는 것을 대답을 잘 못했는데, 양양(襄陽)에 계시던 도안법사(道安法師)가 이 말을 듣고 경문에 서() . 정종(正宗) . 유통(流通)3()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경문에 3분으로 과판(科判)하는 것이 통례가 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문(經文)3분으로 나누는 것은 어떤 경이든 거의가 다 이렇게 분석(分析)하여 공부할 수 있는 공통의 과판법일 뿐이지 그 이상은 나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금강경도 32분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나누어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법회인유분도 3분가운데 서분(序分)이면서 32분 가운데 제일분(第一分)이 됩니다.

 

原 文 如是我聞

解 義 부처님께서 四九년 동안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해인사(海印寺)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입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제자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엮어 낸 것인데, 그 때 아란존자(阿難尊者)가 부처님의 말씀을 외워내는 중역(重役)을 했습니다.

아란존자는 부처님께서 아침에 샛별 보고 마음 깨쳐 도통(道通)하신 그 시간에 태어났다 하여 아란을 한문자로 경희(慶喜:경사스럽고 기쁘다)라고 번역합니다. 이 아란존자가 스므살이 되어서 부처님께 왔습니다. 그때 아란존자는 중이 되는데 세 가지 조건으로 첫째, 부처님은 당시 최고의 대접을 받는 분이었으므로 임금님도 못 먹는 음식을 대중들이 갖다 드리고 하는데 부처님이 잡수시다 남은 음식을 나에게 먹으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위신에 관계됩니다. 둘째, 부처님은 옷을 해다 드리는 일이 많아서 당시 입던 옷을 제자에게 주고 또 부자들이 사서 입고 하는데 나에게 부처님의 헌옷을 입으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제가 출가하기 전에 부처님께서 0년동안 설법하신 것을 새로 한번 낱낱이 개인 교수(個人敎授)해 주셔야 합니다. ”하고 사뢰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받아 주고 그의 출가를 허락하셨 씁니다. 그래서 여가 나는 대로 밤이고 낮이고 아란존자 출가하기 전 이십년 동안 설법하신 내용을 다시 일러 주셨습니다. 아란존자는 한 번 들은 것은 무엇이나 기억하는 좋은 기억력(記憶力)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분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란존자는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다문 제일 (多聞第一 : 제일 많이 들었다는 뜻)이 되셨습니다.

이 아란존자가 부처님 열반하실 때 경전 맨 첫머리에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여시아문(如是我聞) 이라 하라]고 하셨으니, “ 나는 이렇게 들었다 ” “내가 들은대로 쓴다. ” “이렇게 쓰라고 하셨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전 첫머리에는 어느 경에나 [여시아문]이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 누구도 이 제도를 어기지 말고 경전에 찾아 보라. 부처님의 말씀이 그대로 다 있다. ” 는 뜻입니다.

 

 

原 文 一時佛

解 義 불법은 역사가 없다. 역사를 무시한다. ”고 흔히 말합니다. 실제로 불교사상이 그런 경향이 있고 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한 평생 내가 걸어온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으며 구태여 사람 이름도 기억하려 하지 않고 장소도 사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애착해 보았자 마음 공부에 도움이 안되는 까닭입니다. 박 누구라고 하지만 참말로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역사성을 전연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교 수행에 있어서는 장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고찰을 한다든지 하는 때에는 불편이 많습니다. 그래서 경전에도 일시(一時)에 어느때, 각설 이 때 그런 식으로 돼있고 아무날 아무시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있습니다. 첫째, 시간은 없는 거다. “서기 몇해다 불기 얼마다 해 봤자 그것은 어림없고 말 도 안된다. 왜냐하면 시간은 그 자체가 본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중생따라 시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천당이 스물 여덟 하늘이나 되는데 맨 아래 천당인 사왕천(四王天)의 하루가 우리 인간의 오십년이 되고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면 그 하늘 일주야가 우리의 백년이나 되며, 또 더 올라가면 우리 이백년 . 사백년이 거기 하루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역사적인 시간을 말해봤자 천당사람에게는 안 맞으며 또 다른 세계에도 역시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한국의 열시는 유럽에서는 밤 한 시가 되고 인도의 아침 열시는 미국에서는 역시 밤이 될 것입니다. 또 달나라의 시간이 다르고 하루의 시간도 다릅니다. 자전(自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달나라의 일년, 수성(水星), 금성(金星)의 일년은 지구의 일년과 크게 다릅니다. 이와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 시간이 다르므로 완전한 시간을 말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인간계뿐만 아니라 전 중생계(衆生界)를 구제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셋째, 불타(佛陀)의 경지에서는 시간 공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인간 세상의 시간 개념에 얽매이는 것은 경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나무꾼이 산에 나무하러 올라가서 나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노인들이 바위 위에 앉아서 바둑을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들은 수염을 날리면서 얼굴이 하도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신선 같은 거룩한 풍채에 마음이 끌린 나무꾼은 정신을 잃고 영감들을 쳐다보는 동안에 바둑 한 판이 다 지났습니다. 그래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생각한 나무꾼은 자기 지게 있는 데로 가보니 그 동안 벌써 몇 백년이 지나갔는지 지게도 없어지고 도끼 자루도 다썪어서 조금만 남았더라는 옛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에 한 이십년 삼십년 사는 때가 있습니다. 아들 딸 다섯 여섯 낳고 온갖 사업을 다 하고 한국 갑부가 되어 택시를 여나무대 놓고 밤이나 낮이나 재미나게 호강을 하면서 살았는데 깨고 보면 꿈입니다. 그래서 깨어서 시계를 보면 일분도 안 되었는데 꿈에 들어가서는 이십 년의 생활이 지난 것입니다.

이렇게 꿈에 들어가 몇십년을 살았다는 것도 우리의 한낱 생각일 뿐 사실 이십년이 아니며 손목 시계가 일초가 안 됐다고 하는 것도 우리 생각 일뿐 역시 일초는 아닙니다. 일초란 생각 그것이 꿈에 이십년이란 생각으로 된 것이며 아들 딸 낳고 살림 산것도 내 생각이 그렇게 나타나 보인 것 뿐입니다.

꿈이 우리의 생각으로 부터 창조된 것이듯 시간과 공간은 우주와 인생의 근본인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벌어진 현상이며 그 실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공(時空)을 완전히 초월한 부처님 세계에서는 반드시 어느나라 몇 년 갑자년 을축년 등을 기록 하는 것이 오히려 부처님 법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들었노라. 한때 어느때...] 그렇게만 기록했던 것입니다.

 

 

原 文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圓

解 義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고 했는데, 사위국은 가비라국 옆에 있던 나라 이름입니다. <祇樹給孤獨園>이란 그 나라 서울에 남산공원 . 탑골공원 같은 큰 공원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기수와 급고독원의 두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사의극의 기타태자(祇陀太子)가 본래 참 좋은 정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방 한 오십리쯤 되고 큰 정원에 온갖 나무와 꽂이 다 있고 온갖 정자가 있고 온갖 시설이 다 있는 정원 중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타태자가 자기 공원에 심은 나무를 뜻하여 기수(祇樹)라 한 것입니다. 또 급고독(給孤獨)이라는 장자(長者)는 부처님을 만나 불법을 듣고 세상에 없는 거룩한 법임을 알고나서는 그는 만일 이 부처님과 같은이가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영원히 고민과 번뇌를 해탈하지 못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자 못할 뻔했구나, 내가 이제 부처님을 만나서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고 진리를 배우게 됐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 하고 환희심을 내면서 부처님 거처를 하나 만들어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장소를 물색한 끝에 기타태자가 가지고 있는 공원이 인도에서 제일 좋다고 생각하여 그 공원을 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기타태자는 온 정성을 다해서 가꾼 정원이고 보니 매우 애착하여 팔지 않을 뜻으로 그렇게 꼭 사고 싶으면 손바닥 두께의 순금을 내정원에 꽉 채우시오, 그렇게 깔아 주면 내가 팔겠오. ” 했습니다.

본래 급고독장자는 불쌍한 이 도와주기 좋아하는 큰 부자였으므로 고독한 사람이나 없는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잘 준다고 하여 급고독(給孤獨)이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밥이 없으면 밥을 갖다 주고 옷이 없으면 옷을 대 주고 병이 났으면 병을 낫게 해 주고 불우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도와 주는 큰 자선사업가(慈善事業家)였고 큰 부자였습니다. 급고독장자는 인도 천지의 금이란 금은 다 모았습니다. 그래서 절 지을 자리를 깔아 들어 가다가 금이 모자라 한쪽을 못깔았는데 급고독은 그 자리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기타태자는 이 광경(光景)을 보고 왜 우느냐 고 물었습니다. “ 내가 인도 천지의 금을 다 사들였는데도 이렇게 못다 채워서 부처님 계실 정사(精舍)를 세우지 못하게 됐으니 이 소원을 어떻게 이루나 하고 슬퍼서 웁니다. ” 하였습니다. “석가 여래가 어떤 분 입니까. 나도 듣기는 들었지만 얼마나 거룩하기에 그렇게 지극정성을 다해서 받드십니까. ”

제가 인도의 모든 도인 철인을 다 만나 보았지만 브처님에게는 지혜로나 수도력으로나 무엇으로나 비교할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참으로 진리중의 진리이고 완전무결한 인생을 처음으로 밝혀 주시는 분입니다. 나는 재산뿐 아니라 이 몸뚱이까지 다 공양을 바친다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 이 말을 들은 기타태자는 그렇게 위대한 도인이 나왔습니까. 그러면 나머지는 동산의 모든 나무들과 함께 내가 시주(施主)하겠습니다. 장자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다 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타태자와 급고독장자의 두 힘으로 이 절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절을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누가 개인으로 절을 지으면 그 사람 개인으로 절이름을 지어 기념하는 예가 많습니다. 도선사도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여 지은 이름인데, 이것이 비석보다도 더 큰 기념이 됩니다. 고려 때 조성한 팔만대장경은 다 목판(木版)인데 경책 가운데에 시주 이름을 함께 새겨 둡니다. 가령 돈을 만량 냈다면 만 장에다가 이름을 하나씩 다 적어서 영원히 그 경전의 법문과 함께 기념하자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절 이름을 창건공덕주(創建功德主)의 이름으로 짓는 예는 일본이나 중국 . 인도에도 다 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祇樹給孤獨園>은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에 있었던 대표적인 예라 하겠읍니다.

 

 

原 文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解 義 [ 큰 비구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계셨다 ]함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큰 스님네를 일컫는 말입니다. 계 지키는 것이나 수행하는 신심이나 마음을 깨달은 법력(法力)이나 아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비구 대중의 모범이 될만하고 부처님의 제자다운 도인(道人)이란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일 처음으로 제도하신 제자는 사실은 비구입니다. 비구는 세존께서 싣달태자의 몸으로 몰래 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出家)하시자 부왕(父王)이 다섯 사람에게 명하여 태자를 잘 보살피도록 하였던 아야교진여(阿若陳如)등입니다. 비구는 석존(釋尊)의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여 유명한 녹야원(鹿野苑)에서의 첫 법문하실 때 제자가 되므로 비로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갖추게 한 인연 깊은 제자입니다.

그 다음에 또 중인도(中印度)의 비사리성(毘舍離城)의 선각장자(善覺長子)의 아들로서 그 일족(一族)과 친구들 오십인이 함께 출가한 야사장자(耶舍長子)가 있으니 이렇게만 해도 오십오인이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네분인데 첫째는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바로 전해 받은 제일 상좌(上佐)인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삼가섭이라고 하는 삼형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처음에 녹야원에서 부처님 제자가 된 비구중에 십력가섭(十力迦葉)이란 분이 계셨으므로 이분까지 합하면 다섯분의 가섭이 되는 턱입니다. 그 가운데 삼형제의 삼가섭은 가야성(迦倻城)이라는 지방에서 천명이나 되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정신적 지도자 였습니다. 그들은 불을 숭상하는 외도(事火外道)로서 맏형인 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은 오백인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 둘째인 나제가섭(那堤迦葉)이 이백오십인 , 막내인 가야가섭(迦耶迦葉)이 이백오십인과 함께 수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삼형제가 부처님을 만나서 그 위대한 인격과 법력(法力)에 귀의(歸依)하였습니다.

그 뒤에 또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健連)이 각각 자기의 제자 일백인씩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 했으므로 천이백 오십오 비구가 되는데, 야사비구(耶舍比丘)와 함께 출가한 도중(徒衆)도 자세히는 오십사인이라고 하므로 이렇게만 해도 천이백오십구인의 비구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이분들 말고도 마하가섭존자(摩訶迦葉尊者)나 수보리존자(須菩堤尊者)나 우바리존자(優婆離尊者), 아란존자(阿難尊者)같은 십대제자(十代弟子)와 또 십대제자의 제자가 있고 그밖에도 많은 비구가 있으며 비구니(比丘尼)만 해도 부처님을 길러주신 부처님의 이모 대애도비구니(大愛道比丘尼)는 많은 여인과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의 시조(始祖)가 되었으며 부처님이 태자로 계실당시 태자비(太子妃)였던 야수다라(耶輸陀羅妃)도 오백의 여인을 이끌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이백오십인이라 한 것은 부처님을 늘 모시고 다니며 처음부터 사십팔년간 법문을 들은 제자 가운데 큰 수만을 따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경의 처음에 대개 이 천이백오십인이 나오는 것은 부처님의 제자가 많은 것을 뜻합니다.

 

 

靑潭스님 금강경 대강좌 중에서


- 일산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