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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2018)년 12 월 17 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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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하안거 해제 법어, '자나 깨나 천번 만번 화두에 들어야'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하안거 해제 법어

 

전국 100개 선원 2,202명 스님 안거 마쳐

불기 2650년 하안거 해제를 앞두고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8월 17일 법어를 통해 대중들의 끊임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이날 진제 스님은 화두가 없는 이들에게 ‘부모미생전’ 화두를 내리고 해제 후에도 장좌불와 화두참구에 들 것을 강조했다.

스님은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 인가?’ 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일체처일체시 (一切處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해야 할 것이라”며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며 본성(本性)이 드러나고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들과 더불어 동등한 지혜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정리한 불기 2560년 하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전국 100개 선원(총림 8곳, 비구선원 59곳, 비구니선원 33곳)에서 총 2202명의 대중이 방부를 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해제법문 전문이다.

상당하시어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識得拄杖子하면 今日解制어니와
不識拄杖子하면 今日結制이로다.
이 주장자 진리를 알 것 같으면 금일이 해제이지만
이 주장자 진리를 알지 못할 것 같으면 금일이 결제로다.

어느덧 여름 석 달 안거(安居)가 지나고 해제일이 도래하였음이라. 금일이 해제일이라 할지라도, 화두(話頭)를 타파(打破)하지 못했다면 각자가 석 달 동안 얼마만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챙기고 의심했는지, 얼마만큼 일념이 지속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반성해야 함이로다. 모든 대중은 해제일에 상관치 말고 다시금 발심(發心)하여 오로지 생사해탈(生死解脫)의 이 일을 해결하는데 일편단심으로 정진(精進)에 정진을 거듭할지어다.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 인가?’ 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일체처일체시(一切處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해야 할 것이라.
생사해탈의 대오견성(大悟見性)을 위해서는 모든 것에 초연(超然)해야 함이로다. 그러니 지금껏 지어 온 모든 반연(攀緣)은 끊고 시비장단 (是非長短)은 내려놓고, 먹는 것과 입는 것과 몸뚱이에 끄달리지 말고, 견성(見性)하고 말겠다는 확고한 대신심(大信心)과 불타는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어 간절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여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혼신(渾身)의 노력을 쏟아야 함이로다.
이 견성법(見性法)은 일념(一念)이 지속되지 않으면 깨달음이란 불가능함이라. 그렇게 정성껏 잡도리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화두가 익어져서 밤낮으로 흐르고 흐르다가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게 된다.
그때는 모든 습기(習氣)와 의식분별이 재[灰]가 되어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 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며칠이 지나가는지 몇 달이 지나가는지 몇 년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되니, 이것이 일념삼매(一念三昧)인 것이다.
이처럼 일념삼매가 시냇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지속되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서 본성(本性)이 드러나고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들과 더불어 동등한 지혜를 얻게 됨이로다.
그리하면 어떠한 법문에도 바른 답이 흉금(胸襟)에서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흘러나와서 살활종탈(殺活縱奪)의 수완을 갖추고 억겁세월(億劫歲月)이 지나도록 진리의 낙을 수용하며 불조(佛祖)와 인천 (人天)의 스승이 되어 천하를 종횡(縱橫)하는 대장부의 활개를 치게 됨이로다.

우리선문(禪門)에서 가장 영웅적인 호걸을 갖춘 이가 누구인고!
임제 선사(臨濟 禪師)와 덕산 선사( 德山 禪師)로다.
두 선사는 진리의 고준한 안목을 만천하에 드날려 천고(千古)에 빛낸, 조사(祖師)중에 조사요, 영웅 가운데 영웅이라.

임제 선사와 덕산 선사를 알고자 할진댄, 각자의 화두를 성성(惺惺)히 챙겨서 일념이 지속되는 과정이 와야 천불만조사와 더불어 동참하리니, 모든 대중은 혼신의 정력으로 정진에 힘쓸지어다.

석일(昔日)에 덕산(德山)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대중을 지도하고 계실 때, 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두었다. 한분은 암두(岩頭) 선사인데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또 한 분은 훗날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신 설봉(雪峰) 선사였다.
암두 선사는 덕산(德山) 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일여(一如)하게 지내다가, 일일(一日)에 덕산 선사를 친견하기 위해 조실채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조실스님 방문을 열고 한 발은 방 안에 들여놓고 다른 한 발은 마루에 딛고 서 있으면서 물었습니다.
“선사님, 제가 성인(聖人)입니까? 범부(凡夫)입니까?”
이에 덕산 선사께서 문득 할(喝)을 하시니, 암두 스님은 절을 올리고 되돌아갔습니다. 그런 후 동산(洞山) 선사께서 덕산 선사와 암두 스님이 거량한 것을 전해 듣고 평(評)하시기를,“암두전활(巖頭全豁)상좌가 아니고는 덕산의 할을 알아듣기 어렵도다.”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암두 스님이 그 말을 전해 듣고는,“동산 노인이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하는 구나. 내가 그 당시에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렸었노라.”하였습니다.
모든 대중, 어느 곳이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린 곳인고?

이 법문이야말로 도인(道人) 문중에서 법의 안목(眼目)을 가리는 골자이다.
이러한 법문은 옛 부처가 화현(化現)한 경우가 아니고는 활개를 칠 수가 없는 대문이다.
그간에 무수 도인이 출세(出世)하셔서 심오한 법문을 많이 설하셨지만,
이 법문을 능가할 만한 법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法門도 알기가 매우 어려움이라.
大衆은 아시겠습니까?

하루는 덕산 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발우(鉢盂)를 들고 공양간으로 걸어가셨다. 공양주인 설봉 스님이 이 모습을 보고 여쭙기를, “방장 스님,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조실방으로 돌아가 버리셨다.

그 광경을 설봉 스님이 사형(師兄)되는 암두 스님에게 말하니,
암두 스님이 듣고는 대뜸 말했다.
“덕산 노인이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하는구나!”
자신의 스승이건만 단번에 이렇게 평가하니 법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과 제자를 따지지 않는 법이로다.

덕산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간 뜻이 무엇이며, 암두 스님은 어째서 덕산 선사가 말후구 진리를 알지 못했다 했는지 알아야 함이로다.

암두 스님의 그 말이 총림에 분분하여, 大衆이 그 소문을 다 알게 되어서, 덕산 선사의 귀에도 들어가니 암두 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
“너는 왜 내가 말후구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고?”하시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다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은밀히 속삭였다. 그런 후로 뒷날 덕산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하시는데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하게 법문하셨다.

법문을 다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니,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손을 잡고,“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법은 천하 도인이라도 당할 자가없습니다. 그러나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합니다.”
하니, 덕산 선사는 과연 3년 후에 열반(涅槃)에 드셨다.

대중은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 대문을 알겠는가?
대체 무엇이라고 속삭였기에 덕산 선사께서 종전과는 판이하고
당당한 법문을 하신 것인가?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이 공안은 백천공안(百千公案) 가운데 가장 알기가 어려운 법문인지라, 천하 선지식도 바로 보기가 어려워서 이 법문에 대해서 평을 한 이가 거의 없음이로다.
그래서 이 공안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 대오견성을 했다고 인정함이로다.

그러면 금일 모든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한참을 계시다 대중이 말이 없음에 스스로 이르시기를]

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하니
임제미시백염적(臨濟未是白拈賊)이로다.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그 위대한 임제 선사도 백염적이 되지 못함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고 하좌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