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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역사, 불교문화 오롯이 간직한 ‘천년고찰’ 삼척 천은사
   천은사 전경.jfif (230.9K) [1] DATE : 2021-09-17 05: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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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의 산실, 천은사

천은사 관련 연구 성과
사료, 유물, 유적 분석
새롭게 정리한 결과물

“영동남부지역 불교문화
위상·의미 재조명 기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위치하고 있는 천은사는 신라 경덕왕 17년(738년) 인도에서 두타의 세 신선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특히 천은사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우리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이승휴 선생이 10여 년 이상을 머무르며 <제왕운기>를 저술한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에 고려시대 이승휴 유적지로 주목됐다.

최근에는 불교문화와 관련 천은사 경내에서 출토된 금동약사여래입상이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양식을 계승한 유물로, 이 지역에서 약사신앙이 전파되고 발전하는 것을 설명하는 최초의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목조아미타불은 복장 내에서 발견된 ‘중수기’로 보아 임진왜란 이전에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양식 또한 고려후기 단아 양식의 불상을 계승한 조선전기 불상으로부터 조선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 양식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물로 인정받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귀중한 불교문화재를 소장한 사찰로서도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준경묘, 영경묘 수축과 관련한 의궤에서 천은사에 내려진 ‘완문’, ‘수호절목’ 등을 통해 왕릉을 수호하는 조포사였던 천은사로 새롭게 인식됐다.

이런 가운데 김도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이 지금까지 조사 연구된 천은사 관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민속문화재, 전각, 불교민속 등을 새롭게 조사해 정리한 <제왕운기의 산실, 천은사>를 최근 출간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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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이 삼척 천은사 관련 민속문화재, 전각, 불교 민속 등을 새롭게 조사해 정리한 ‘제왕운기의 산실, 천은사’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천은사 전경.

저자는 천은사를 이해하는 데 사용된 다양한 사료와 유물, 유적 분석 등을 통해 천은사의 연혁과 역사성, 복장유물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해석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천은’이라는 이름은 곧 하늘의 은혜라는 뜻이다. 하늘은 보통 통치자를 상징한다. ‘천은’이라는 사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대한제국기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하늘은 넓게 보면 대한제국의 황실, 좁게 보면 대한제국의 황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전까지 달리 불렸다가 천은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불교의 나라였던 신라나 고려가 아닌 왜 숭유억불의 나라인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이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천은사 주변의 준경묘, 영경묘와 천은사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준경묘와 영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양무장군과 그 부인의 묘다. 비록 준경묘와 영경묘에 대한 국가적 보호와 제사는 계속됐으나, 준경묘와 영경묘가 정식으로 인정받고 수축한 것은 대한제국기였다. 이때 왕실 묘 제사의 주체가 바로 흑악사였다. 이곳은 준경묘와 영경묘의 원찰이자 준경묘와 영경묘 제사에 소용될 두부를 만드는 조포사로 지정됐고 그 대가로 각종 잡역이나 세금을 면제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천은’이라는 사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 왕실은 삼척의 많은 사찰 가운데 유독 천은사를 조포사로 지정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로 “천은사는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준경묘와 영경묘에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지기가 두타산을 거쳐 쉰움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천은사로 이어져, 준경묘, 영경묘와 같은 지기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은사가 곧 동안 이승휴 선생이 10여 년간 머물며 민족의식과 역사적 정통성을 내포한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라는 점도 꼽았다. <제왕운기>의 저술이 몽골의 침입으로 인한 혼란기로 인해 민족의식과 역사적 정통성의 고취에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준경묘, 영경묘의 수축 역시 근대 외세의 침입으로 인한 왕실의 정통성 고취에 있다는 점을 되돌아보면, 천은사가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사찰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저자의 남다른 분석이다. 저자는 “향후 천은사에서 1년 동안 진행되는 다양한 불교민속과 의례, 이에 동참하는 신도들의 마음과 운력을 좀 더 폭넓게 조사·분석한다면 천은사와 이 지역의 불교문화를 좀 더 정치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며 “더불어 인근 전통사찰인 삼화사, 신흥사, 영은사와의 비교분석 또한 폭넓게 이뤄져 천은사와 함께 영동 남부지역 불교문화의 위상과 의미가 재조명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