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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碧巖錄) 제100칙 파릉취모검(巴陵吹毛劍)


벽암록(碧巖錄) 100칙 파릉취모검(巴陵吹毛劍)

 

垂示

, 收因結果, 盡始盡終, 對面無私, 元不曾說.

忽有箇出來道一夏請益爲什麽不曾說. 待爾悟來向爾道.

且道爲復是當面諱卻. 爲復別有長處. 試擧看.

 

수시하기를, ()과 과()를 거두어 묶어두고 처음과 끝을 다하였으니, 마주함에 사사로움이 없어 원래 일찍이 말한 적이 없다. 홀연히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하였다.“한여름 결제 동안 법문을 하셨는데 무슨 까닭에 일찍이 말하지 않았다고 하십니까?”“그대가 깨달을 때 말해주리라.”

말해보라, 이는 그 눈앞에서 숨긴 것인가, 아니면 따로이 뭐 특별한 것이 있는가를! 어디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라.

 

 

本則

. 僧問巴陵. 如何是吹毛劍. 陵云. 珊瑚枝枝撑著月.

 

스님이 파릉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僧問巴陵. 如何是吹毛劍.)

- 베었다. 준험하군.

 

파릉스님이 말하였다.

산호의 가지 끝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陵云. 珊瑚枝枝撑著月.)

- 광채가 만상(萬像)을 비추는군.

49(四海九州)에 광명이 있다.

 

[評唱]

파릉스님이 창칼을 쓰지 않았는데도

온 세상 적잖은 사람들의 혓바닥이 땅에 떨어졌다.

운문스님이 사람을 제접하는 법이 이와 같은데,

(파릉스님)는 운문스님의 적자였으며, 또한 각기 책략을 갖추고 있기에

나는 소양(韶陽 : 운문스님)의 신정기(新定機)를 좋아한다.

그는 일생 동안 사람이 못과 쐐기를 뽑아주었다라고 하였는데,

이 화두가 바로 이러한 경지였다.

이 한 구절에 자연 세 구절 즉, 하늘과 땅을 뒤덮는 구절[函蓋乾坤],

모든 사량분별을 끊는 구절[截斷衆流],

상황에 맞추어 설명하는 구절[隨波逐浪]을 갖추고 있다.

대답 또한 기특하였다.

 

부산(浮山)의 원록공(遠錄公)이 말하였다.

깨치지 못한 사람이 어구[]를 참구하는 것은 뜻[]을 참구하는 것만 못하나,

깨친 사람은 뜻을 참구하는 것이 어구를 참구하는 것만 못하다.”

운문스님 회하의 세 큰 스님은 무두 취모검에 대하여, “()!”라고 하였는데,

파릉스님의 대답은 ()’자를 능가하니, 이것이 바로 훌륭한 어구이다.

말해보라, ‘()’자와 산호의 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다는 말은 같이 것인지, 아닌지를.

 

(27)에서 삼구(三句)를 분별하고 한 화살촉이 허공을 끼고 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화두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알음알이[情塵]와 의식[意想]

말끔히 끊어 없애야 만이 비로소 산호의 가지 끝에 매달린 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다면 더더욱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구절은 선월(禪月)스님이 벗을 그리며 읊은 시에서 나온 말이다.

 

두껍기로는 철위산 위의 무쇠와 같고

얇기로는 쌍성선(雙成仙)의 몸에 걸친 비단 같아라.

촉 지방의 비단 위에 수놓은 봉황 무늬, 사르르 움직이고

산호의 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

왕개(王凱) 집안 숨긴 보물 찾기 어렵고

굶주린 안회(顔回)는 눈이 올까 걱정하네.

고회(古檜)의 곧은 붓은 우레에도 꺾이지 않고

설의석녀(雪衣石女)는 하늘 복숭아 반쪽을 쪼개어서

반쪽 복숭아 몸에 차고 느릿느릿 용궁 가니

비단 주렴 은 자리는 왜 그리도 들쑥날쑥.

모르겠구나.

검은 용이 여의주 잃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릉스님이 위의 시구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여

취모검에 대답을 하니 명쾌하구나.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은 후에 이를 입으로 불어 솜털이 잘리면

이는 매우 예리한 칼이므로 이를 취모검이라 한다.

파릉스님은 그의 물음에 바로 답변하니,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는데도 그는 몰랐었다.

송은 다음과 같다.

 

 

要平不平, 大巧若拙. 或指或掌, 倚天照雪. 大冶兮磨礱不下, 良工兮拂拭未歇. 別別. 珊瑚枝枝撐著月.

 

공평하지 못한 일을 공평하게 하려는(要平不平,)

- 하루살이[蚍蜉]처럼 미세하구나.

대장부라면 반드시 이러해야지.

 

못난 듯 뛰어난 솜씨여!(大巧若拙.)

- 소리와 모습에 (현혹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은 숨겼으나 그림자가 보이는구나.

 

혹은 손가락에 혹은 손아귀에 나타나(或指或掌,)

- 살펴보라. 과연 이는 옳지 않다.

 

하늘까지 뻗치는 칼은 서슬이 시퍼렇군.(倚天照雪.)

- 베어라. 엿보았다 하면 눈이 먼다.

 

훌륭한 대장장이라도 갈지 못하고,(大冶兮磨礱不下,)

- 다시 담금질하여 무엇 하려고 간장(干將)의 보검도 상대할 수 없다.

 

뛰어난 기술자일지라도 털고 닦느라 쉬지 못하네.(良工兮拂拭未歇.)

-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다.

설령 간장의 보검을 꺼내온다 해도 3천 리는 도망쳐야 한다.

 

좋구나, 좋구나.(別別.)

- 쯧쯧 ! 뭐 별거 있나. 찬탄할 만하다.

 

산호의 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珊瑚枝枝撐著月.)

- 3(三更)에 달이 지고 쓸쓸한 연못에 그림자 비친다.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갔는가?

곧 천하가 태평하겠군.

술 취한 뒤에 어설프게 남을 근심시키는군.

 

[評唱]

공평하지 못한 일을 공평하게 하려 하는 못난 듯한 뛰어난 솜씨여!”라는 것은,

옛날 어느 협객이 길에서 강한 사람이 악한자를 능멸하는 공평하지 못한 일을 보고서

곧바로 칼을 날려 강한 자의 목을 잘라버렸다.

그러므로 종사(宗師)들은 눈썹 속에는 보검을 감춰두고

소맷자락에 무쇠 철퇴를 넣고 다니며 공평하지 못한 일을 결단해준다.

 

못난 듯 뛰어난 솜씨여!”라는 파릉스님의 답은

불공평한 일을 공평하게 하려는 데 있는데

그의 말이 너무나 교묘하여, 도리어 못난 듯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휘두르지 않고 외진 곳에서 보이지 않게 사람의 머리를 잘라,

사람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혹은 손가락에 혹은 손아귀에 나타나

하늘까지 뻗치는 칼은 서슬이 시퍼렇군이라는 말을 안다면

마치 하늘을 기댄 장검에 늠름한 위엄이 서린 것 같다.

옛사람(반산스님)의 말에

 

마음 달이 호젓이 둥글어

빛이 만상을 비추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있지 않다.

빛과 경계를 모두 잊으니

무슨 물건이 있으랴. 라고 하였다.

 

이 보검이 손가락에 나타나기도 하고 홀연히 손아귀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옛날 경장주(慶藏主)가 이를 말하다가 손을 세우고서 말하였다.

보았느냐, 꼭 손과 손가락 위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설두스님은 남의 길을 빌려 지나가면서 그대들에게 옛사람의 뜻을 보여준 것이다.

말해보라, 모든 곳이 다 취모검이다.

그러므로 세 단계로 된 폭포를 뛰어올라 물고기는 용으로 변화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깊은 밤에 연못물을 퍼낸다고 하였다.

 

조정사원(祖庭事苑)에 기재된 효자전(孝子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왕(楚王)의 부인이 여름에 시원한 곳을 찾아서 쇠기둥을 껴안았는데

이에 교감(交感)된 바 있어 임신을 하였다.

그 후 하나의 무쇳덩이를 낳았는데,

초왕은 간장(干將 : 벼슬이름)에게 칼을 만들도록 하였고,

삼년 만에 두 자루의 칼이 완성되니, 하나는 암컷, 하나는 수컷이었다.

간장은 숫칼은 몰래 숨겨두고 초왕에게 암칼 만을 올렸다.

이에 초왕은 이를 칼집에 잘 넣어두었는데,

항상 슬피우는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를 물으니,

어느 신하가 말하였다.

검에는 암수가 있는 법인데, 우는 이유는 수놈을 그리워해서 그러는 것입니다고 했다.

왕은 크게 성을 내어 간장을 잡아 죽이려고 하니,

간장은 이를 알고서 칼을 기둥 속에 숨겨두고 아내 막야(莫耶)에게 유언을 남기었다.

 

해가 북쪽 창에서 떠오르니

남산의 그 소나무라.

소나무는 돌에서 나니

칼은 그 가운데 있다.

 

그의 아내는 그 뒤 사내아이를 낳고 미간적(眉間赤)이라 이름 하였다.

아이의 나이 열다섯이 되자,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십니까?”

어머니가 지난 일을 말해주자, 오랜 동안 유언을 생각하더니,

기둥 사이에 있는 칼을 찾아내어 밤낮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며,

초왕 또한 그를 찾고자 미간적을 잡는 자에겐 후한 상을 내리겠다는 현상금을 선언하여,

미간적은 마침내 도망을 하였다.

 

얼마쯤 지나가자 어느 길손이 말하였다.

그대는 미간적이 아닌가?”

그렇소만…….”

나는 증산(甑山) 땅 사람인데, 그대를 위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줄 수도 있다.”

아버님은 지난날 허물이 없었는데 억울하게 형벌을 당하였습니다.

그대가 그처럼 은혜로 베풀어준다 하니,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대의 머리와 칼이 있어야 한다.”

미간적이 칼과 머리를 잘라주자, 객은 이를 가지고 초왕에게 올리니,

초왕은 몹시 기뻐하였다.

이에 객이 그의 머리를 기름에 삶으십시오라고 하여,

마침내 가마솥에 머리를 던져 넣었는데

객이 거짓[]으로 머리가 문드러지지 않는다고 하니,

왕이 몸소 임하여 살피려 하자,

객이 뒤에서 칼을 들어 왕의 머리를 베어 가마솥에 던지자

이때에 두 개의 머리가 솥 안에서 서로 물어뜯으며[]싸웠다.

객은 미간적이 이기지 못할까를 염려하여 그를 돕고자 자신의 목을 찔러 솥에 던지니

세 개의 머리가 서로를 물어뜯다가 한참 후에 모두 문드러졌다 한다.

 

설두스님이 하늘까지 뻗치는 칼은 서슬이 시퍼렇군이라 한 것은

흔히 말하는 하늘을 기댄 장검의 시퍼런 광채가 눈을 비춘다는 것이다.

이 칼은 비록 훌륭한 대장장이라도 연마하지 못하고,

비록 뛰어난 기술자로서도 털고 닦기를 그만둘 수 없다.

뛰어난 기술자란, 바로 간장(干將)이다.

고사(故事)에 잘 드러나 있다.

 

설두스님이 송을 끝마치고 맨 끝에서

좋구나, 좋구나라고 말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하겠다.

참으로 좋다.

평범한 칼과는 다르다.

말해보라, 어떤 곳이 참으로 좋은지를.

 

산호의 가지마다 달이 서려 있다.”

이는 이른바 전무후무한 것으로서 짝할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다.

결국은 어떻게 될까? 여러분의 머리가 떨어져버렸다.

노승에게는 다시 작은 게송 하나가 있다.

 

만 섬 가득히 실은 배 손 가는 대로 이끌어

한 톨 쌀알로 뱀을 항아리 속으로 유인했네.

백칙의 옛 공안을 들어다가

몇 사람의 눈에 모래를 뿌렸을까?

 

 

(동국대교수 성본스님 강설)

 

100() 파릉화상의 취모검

선승들이 구족해야 할 지혜작용을 으로 비유

<벽암록> 100칙은 파릉 화상의 취모검(吹毛劍)에 대한 질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질문했다.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파릉 화상이 말했다.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

僧問巴陵如何是吹毛劍. 陵云珊瑚枝枝撑著月.

 

 

본칙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는데, <오등회원> 15권 파릉 선사전에 전한다. 파릉 화상은 운문문언(864~949)선사의 선법을 이은 호감(顥鑑)선사로 동정호에 가까운 악주(岳州) 파릉 신개원(新開院)에서 교화를 펼쳤는데, 변론의 대가였다고 한다. 특히 본칙의 공안과 <벽암록> 13칙에 어떤 스님이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묻는 질문에 파릉 화상은 하얀 은쟁반위에 하얀 눈을 쌓은 것(銀椀盛雪)’이라고 대답한 말, 그리고 어떤 것이 도()인가라는 질문에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떨어졌다는 파릉의 삼전어(三轉語)라는 유명한 공안이 전한다.

 

살인도는 번뇌망념 중생심 차단 교화수단

활인검은 번뇌망념 텅 비운 반야지혜 작용

 

파릉 화상의 대답은 운문 선사의 교화수단을 그대로 잘 계승하였다고 하여 그를 운문의 적자(的子)라고 한다. ‘평창에 운문의 문하에 뛰어난 3명의 선승(三尊宿)이 있는데, 마삼근(麻三斤)으로 유명한 동산수초(洞山守初), 나한광과(羅漢匡果), 그리고 파릉 선사다. ‘전등록’ 23권에 어떤 스님이 이들 3명의 선승에게 똑같이 취모검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수초 선사는 금주(金州)의 객()’이라고 대답하고, 광과 선사는 끝났다()’라고 대답하고, 파릉 화상은 본칙과 같이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이 달렸구나!’ 라고 대답하였다.

 

원오는 이들 세 사람 가운데, 오직 파릉 화상의 대답이 가장 뛰어났고, 불법의 본지를 분명히 드러냈다고 칭찬하며, 광과 선사가 (끝났다)’ 라고 한 말과 파릉 화상이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이 달렸구나!’라고 한 말과 같은가, 다른가?’를 반문하고, 광과 선사가 끝났다()’고 한 말은 불법의 냄새와 깨달음의 향기가 남아 있지만, 파릉 화상의 대답은 이러한 자취나 흔적을 모두 초월한 경지에서 분명하게 제시한 안목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취모검(吹毛劍)이란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고대의 명검이다. 선어록에는 금강보검(金剛寶劍), 막야검(鏌鎁劍), 관우 장군의 대도(大刀)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야의 지혜의 영묘한 작용을 비유한 것이다. <유마경>에 지혜의 검으로 번뇌의 적을 타파한다고 하는 것처럼, 일체의 사량분별을 끊어버리고 곧바로 여래의 경지를 체득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지혜의 칼로 일체의 번뇌 망념을 끊어버리는 비유를 많은 경전과 어록에서 설하고 있다. <임제록>에도 지혜의 칼이 작용하면 무일물(無一物)의 경지()라고 설하며, <증도가>에도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다. 외도의 심장을 쳐부술 뿐 아니라, 천마의 간담도 떨어뜨렸다고 읊고 있다.

 

<회요> 23권에 도한 선사는 영묘하고 예리한 보검(寶劍)이 항상 눈앞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조당집> 7권에 협산이 석상은 살인도는 있지만, 활인검이 없고, 암두 선사는 살인도도 있을 뿐만 아니라 활인검도 있다고 평하고 있는 것처럼, 선승들이 반드시 구족해야 하는 지혜작용을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물은 모두 두 가지 얼굴이 있는데, 살인도는 부정적이고 파괴하는 얼굴이며, 활인검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얼굴이다.

 

즉 살인도는 번뇌 망념의 중생심을 차단하는 교화수단이고, 활인검은 일체의 번뇌 망념을 텅 비우고 반야의 지혜를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살인도는 종래의 구습에 젖은 중생의 생멸심과 차별, 분별심을 제거하고 없애는 지혜의 칼이고, 활인검은 본래 청정한 불심의 지혜를 회복하여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반야의 지혜로 보살도의 삶으로 활발하게 작용하는 방편수단의 칼이다.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의 실천이 살인도이고, 본래 청정한 불성의 지혜로 만법을 여여하고 여법()하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반야지혜가 활인검이다.

 

선의 수행은 분별의식과 상대적인 대립관념이라는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의 실천을 죽인다는 살인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하여 반야지혜의 작용이 없이 중생심으로 사는 수행자를 혼이 흩어지지 않은 사인(死人)이라고 한다. 잠시 번뇌 망념에 떨어져 본래심을 상실한 수행자를 죽은 사람과 같이 취급한다. 그래서 지혜작용을 죽이는 일체의 번뇌 망심을 죽인다고 표현한다.

 

임제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고 표현한 것처럼, 부처나 조사라는 고정관념에 떨어지면 자신이 반야지혜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일체의 경계나 차별심을 끊어버리고 텅 비운다는 선수행을 죽인다고 한다. 죽이기만 하고 살리는 능력이 없다면 사람을 못쓰게 하고, 지혜작용을 살리기만 하고 죽이는 작용을 쓰지 못하면 정사를 판단하는 안목이 없고, 선병을 진단할 능력이 없는 눈먼(暗證)선승이다. 살인도와 활인검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선승의 지혜작용을 살활자재(殺活自在)라고 하는데, 선승은 반야지혜의 예리한 취모검의 두 칼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문수의 지혜의 칼인 금강보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본칙에 어떤 스님이 취모검을 묻는 질문에 파릉 화상은 보월관휴(禪月貫休, 832~912) 선사가 벗을 그리며 읊은 시의 한 구절로 대답한 것이다. “두껍기는 철위산위의 무쇠와 같고, 얇기로는 쌍성선(雙成仙)의 몸에 걸친 비단 같도다. 촉 지방의 비단위에 수놓은 봉황무늬 사르르 움직이고, 산호의 가지마다 달이 걸려 있구나. (이하 생략).” 이 시는 <선월집> 2권에 싣고 있는데, 그리운 벗의 인품을 형용한 것이다. 파릉 화상이 취모검에 대한 대답은 바다 속에 있는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빛이 밝게 비추어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같다. 달빛의 광명(지혜)이 산호 가지마다 서로서로 비추어 걸림 없이 상즉상입하여 무애자재한 경지이다. 이러한 경지를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있겠는가.

 

원오는 광채가 만상을 삼켰다고 착어했다. 이 말은 반산보적 선사의 유명한 게송 마음 달이 홀로 원명하니 빛이 만상을 삼킨다(心月孤圓 光呑萬象)”는 일절이다. 사해(四海) 구주(九州) 온 세상이 광명으로 가득찼다고 착어한 것처럼, 본래 구족한 불심의 반야지혜칼(吹毛劍)의 광명이 온 천하에 두루하고 있다고 하였다. 원오는 평창에 파릉 화상은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여 그 스님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는데도 그는 모르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공평하지 못한 일을 공평하게 하네.” 옛날 협객이 길에서 불평(不平)을 보고, 강한 사람이 악한 자를 능멸하기에 칼로 강한 자의 머리를 쳐 날렸다고 하는 고사에 의거하여, 선승은 미간에 보검을 감추고, 소매에 금추(金鎚)를 감추어 천하의 공평치 못한 일을 처단한다. 취모검을 질문한 스님의 견해(不平)를 파릉 화상은 반야지혜인 산호 가지의 보검으로 공평하게 하였다.

 

뛰어난 솜씨는 졸작과 같네.” <노자> 45장의 말인데, 파릉의 뛰어난 지혜는 오히려 졸렬한 것처럼 보이는 것. 산호 가지에 달빛이라는 일구(一句)로 불평을 공평하게 한 지혜작용은 보검을 사용한 것 같지 않고 취모검을 휘둘렀다.

 

혹은 손가락, 혹은 손아귀에 나타나.” 검도의 달인은 손가락과 손을 자유자재로 쓴다. 각자가 구족한 불심의 지혜인 취모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하늘까지 뻗치는 빛 눈을 비춘다.” 파릉 화상이 휘두른 취모검의 광명이 너무나 차가워 눈과 서리를 비춘다.

 

대야(大冶)라는 훌륭한 대장장이라도 이 칼을 갈지 못하고, 양공(良工)이라는 뛰어난 기술자라도 털고 닦느라 쉬지 못하네.” 이 두 구절은 취모검을 갈아서 날을 세우기 어렵고, 갈을 잘 갈아서 녹슬지 않도록 보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읊고 있다. 털어버리기 어렵다는 말은 사람들의 본분상에 구족되어 있는 금강보검을 결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갈고 털어버릴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별다르고 별다르다.” 이 금강 보검은 세간의 보검과는 전연 다르고, 사용하는 방법도 다르다. 군병에서 사용하는 칼과는 격별한 것이다. “산호의 가지가지에 달이 걸려 있구나.” 설두 역시 파릉 화상이 대답한 취모검의 지혜로 자신의 입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碧巖錄 終

 

              - 경인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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