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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碧巖錄) 제99칙 숙종십신조어(肅宗十身調御)


 

벽암록(碧巖錄) 99칙 숙종십신조어(肅宗十身調御)

 

垂示

. 龍吟霧起虎嘯風生. 出世宗猷金玉相振, 通方作略箭鋒相拄.

遍界不藏遠近齊彰, 古今明辨. 且道是什麽人境界. 試擧看.

 

수시하기를, 용이 노래하면 안개가 피어나고 호랑이가 휘파람을 불면 찬바람이 인다. 출세간의 종지는 금옥(金玉) 소리가 서로 울려 퍼지는 것과 같고, 사방으로 통달한 지략은 화살과 칼끝이 서로 버티는 것과 같다. 이는 온 세계 어디에다가도 감추지 못하고 멀고 가까이에서 일제히 나타나며 고금을 밝게 분별한다. 말해보라, 이는 어떤 사람의 경계인가를!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本則

. 肅宗帝問忠問師. 如何是十身調御. 國師云. 檀越踏毘盧頂上行.

帝云. 寡人不會. 國師云. 莫認自己淸淨法身.

 

숙종황제가 충국사(忠國師)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십신조어(十身調御) 입니까?”(肅宗帝問忠問師. 如何是十身調御.)

- 작가다운 군왕이며 당나라의 천자로다.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지.

머리 위엔 권륜관(捲輪冠)이요, 발에는 무우리(無憂履)이다.

 

단월(檀越)이여!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초월해가시오.”

(國師云. 檀越踏毘盧頂上行.)

- 수미산 저 언덕에서 손을 잡고 함께 가는구나.

아직도 (밟고 간다는 흔적이) 남아 있군.

 

모르겠습니다.”(帝云. 寡人不會.)

- 왜 모르실까? 참 잘했다, 안 가르쳐주기를.

황제가 당시에 대뜸 큰 소리를 질렀더라면, 아니 모르니 따위를 무엇에 쓸거냐!

 

자기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이 있다고 잘못 알지 마시오.”

(國師云. 莫認自己淸淨法身.)

- 비록 이 같은 말을 했어도 벗어날 곳은 있다.

술 취한 뒤에 어줍잖게 남(황제)을 근심시키는군.

 

[評唱]

숙종황제가 동궁(東宮)에 있을 때 충국사를 참례했고,

그 뒤 즉위하자 더욱 도탑게 존경하여 출입하고 맞이하고 전송함에

몸소 수레와 가마로 받들었다.

 

하루는 질문거리를 가지고 국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여래의 십신조어입니까?”

단월이여!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밝고 가시오.”

평소 국사의 척추뼈는 하나의 무쇠처럼 견고하더니만

제왕의 앞에선 물크러진 흙처럼 흐물흐물하였다.

그러나 비록 이처럼 섬세하게 답변하였으나 그래도 잘한 점이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대가 알고자 한다면,

단월이여! 모름지기 비로자나의 정수리 위로 가야만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알지 못하고 다시 괴인은 모르겠다고 하니,

국사는 뒤이어 참으로 매몰차지 못하게도 수준을 낮추어

다시 첫 구절에다 주석을 붙여 주었다.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잘못 알지 마시오.”

 

이는 이른바 사람마다 모두 만족스럽고 하나하나 원만하게 성취되어 있다.

그가 한 번 놓아주고 한 번 거두어들인 것을 살펴보면

팔방에서 적을 대처한 것과 같다.

듣지 못하였는가, “훌륭한 스승이란 기연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

마치 바람결에 따라서 돛을 거는 것과 같다고 한 말을.

만일 한 가지만을 고수하면 어떻게 서로가 어울릴 수 있겠는가?

 

살펴보면, 황벽(黃檗) 노장은 사람을 제접하는데 능하였다고 하겠다.

그는 임제스님을 만나자 세 차례나 통렬한 60방망이를 때려

그 자리에서 바로 임제스님을 깨쳐주었다.

그러나 배상국(裵相國)을 지도하는 데에서는 매우 말이 많았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잘 지도하는 훌륭한 스승이 아니겠는가.

 

충국사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숙종황제를 제접하였다.

이는 그에게 팔방으로 적을 받아들일 만한 솜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십신조어(十身調御)란 곧 열 종류의 타수용신(他受用身)이며,

(((삼신(三身)이 곧 법신(法身)이다.

왜냐하면 보신·화신은 참다운 부처가 아니며, 설법하는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법신을 따라 살펴보면 하나의 텅 비어 신령하게 밝은 고요한 비춤이다.

 

태원(太原)의 부상좌(孚上座)

양주(楊州)의 광효사(光孝寺)에 있으면서 열반경을 강의하였는데,

때에 사방으로 행각하던 스님이 있었다.

그는 바로 협산전좌(夾山典座)였다.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혀 그 절에 머물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강의를 듣게 되었다.

삼인불성(三因佛性)과 삼덕법신(三德法身)의 부분에 대한

법신의 오묘한 이치를 널리 설명하는 데 이르러

전좌는 갑자기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였다.

부상좌는 그를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강의를 끝마치고 그에게 물었다.

 

저는 본디 지혜가 용렬하여 문자에 의거하여 뜻풀이를 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강의할 무렵 상인(上人)께서 웃으신 것을 보았는데,

저에게 반드시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인께서는 이를 말씀해주십시오.”

 

협산전좌는 말하였다.

좌주(座主)께서 묻지 않으셨다면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좌주께서 이왕 물으셨으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실로 좌주께서 법신을 몰랐기 때문에 웃었던 것입니다.”

아까처럼 해설하면 어느 곳이 잘못된 것입니까?”

좌주께서는 다시 한 번 말해보십시오.”

법신의 이치는 마치 허공 같아,

시간적으로는 삼제(三際)를 다하고 공간적으로는 시방(十方)에까지 뻗쳐,

팔극(八極)에 가득하고 하늘과 땅을 포괄하였습니다.

이는 인연따라 감응하며 두루두루하지 않는 바 없습니다.”

좌주의 말씀이 옳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는 법신의 주변적인 것만 알았을 뿐 실제로 법신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객께서는 저를 위해 말씀해주십시오.”

정 그러시다면 좌주는 잠시 강의를 그만두시고

열흘간만 고요한 방에서 고요히 생각하며,

마음을 거두고 생각으로 거두어 선악 따위의 모든 반연을 일시에 놓아버리고

스스로 궁구해보십시오.”

 

부상좌는 그의 말대로 똑같이 하였는데,

초저녁에서 오경(五更)에 이르러 북 울리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치게 되었다.

이에 곧바로 선객의 문을 두드리자, 전좌는 말하였다.

누구시오?”

접니다.”

전좌는 혀를 찬 후 말하였다.

그대의 대교(大敎)를 전하여 부처님 대신 설법하라 하였는데,

야반에 무엇 때문에 술에 취하여 거리에 누웠오!”

지금껏 경을 강의했던 것은

나를 낳아준 부모의 콧구멍을 눌렀다 비틀었다 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 이후론 다시는 감히 이 같은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특한 놈을 살펴보라.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 것을 알고서

나귀 앞이나 말 뒤를 따라 다니는 종노릇하네.

모름지기 업식(業識)을 타파하여 한 실오라기만큼도 얻은 것이 없다 하여도

한 개는커녕 반 개 정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옛사람(지공화상)의 말에

터럭 끝만큼도 닦아서 배우려는 마음[修學心]을 일으키지 않아도,

형상없는 빛[無相光]속에서 항상 자유로웠다고 하니,

다만 항상 적멸(寂滅)을 알 뿐 성색(聲色)을 인식하지 말며,

영지(靈知)를 알 뿐 망상은 피우지 말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가령 철퇴가 정수리 위에서 왔다갔다 한다해도

정혜(定慧)는 또렷이 밝아 끝내 잃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달마스님이 이조(二祖)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흰 눈 위에서 팔을 끊은 것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함인가?”

저는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스님께서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대에게 편안함을 주리라.”

마음을 찾아보아도 끝내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이 말에 이조스님은 홀연히 깨쳤다.

말해보라, 이러한 시절을 당하여 법신은 어느 곳에 있을까?

장사(長沙)스님은 말하였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종전대로 식신(識神)으로 알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량겁이 흐르는 동안의 생사의 근본이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본래인(本來人)이라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 것을 인식하고선,

눈알을 부라리며 망상분별을 할 뿐이다.

이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잘못 알지 말라고 하였는데,

여러분이 자기의 법신을 꿈속에서도 보지 못했는데,

또다시 무엇 때문에 잘못 알지 말라는 말을 하는가?

교학(敎學)에서는 청정법신을 극칙으로 삼는데

무엇 때문에 이를 오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듣지 못하였느냐?

인식해도 여전히 옳지 않다는 말을.

 

쯧쯧! 바로 방망이로 때렸더라면 좋았을걸.

이 뜻을 알 수 있는 자라면

비로소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인식하지 말라는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국사)가 노파심이 간절했던 그 점을 의심하였지만

흐물거리는 진흙 속에 가시가 있는 것을 어찌하랴.

 

왜 보지 못하였느냐,

동산스님이 사람을 제접하는 데는 세 가지 길이 있었던 것을.

이른바 현로(玄路조도(鳥道전수(展手)이다.

처음 발심한 사람이 도를 배우려면 이 세 길을 밟아가야 한다.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평소 스님께서 학인에게 조도(鳥道)로 가라 하셨는데,

어떠한 것이 조도입니까?”

한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어떻게 갑니까?”

똑바로 발밑에 흔적 내지 말고[足下無私]가라.”

조도로 가는 것은 본래 면목이 아닐는지요?”

화상아, 왜 전도 되었느냐?”

학인이 전도된 곳이 어디입니까?”

전도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종을 주인으로 생각하느냐?”

어떤 것이 본래면목입니까?”

조도로 가지 않는다.”

 

모름지기 견해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야만이 조금이나마 서로 응할 수 있는 것이다.

대뜸 하나가 되어 자취를 없애고 소리를 삼킨다 해도

납승의 문하에서는 사미(沙彌행자의 견해일 뿐이다.

반드시 속제(俗諦) 속으로 머리를 돌려 대용(大用)을 크게 일으켜야 한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一國之師亦强名, 南陽獨許振嘉聲. 大唐扶得眞天子, 曾踏毘盧頂上行.

鐵鎚擊碎黃金骨, 天地之間更何物. 三千刹海夜沈沈, 不知誰入蒼龍窟.

 

한 나라의 국사 또한 억지 이름,(一國之師亦强名.)

- 그럴 필요가 있을까?

눈에 어른거리는 허공 꽃이며 물 위의 달일 뿐이다.

바람이 스치니 나무 끝이 흔들린다.

 

혜충국사 홀로 명성을 떨쳤구나.(南陽獨許振嘉聲.)

- 과연 요새가 되는 나루터를 꽉 틀어막았군.

(그런 사람은) 천만 명 중에 한 명은커녕 반 명도 없다.

 

당나라를 떠받치는 참다운 천자,(大唐扶得眞天子,)

- 가엾구나.

제접해서 무엇에 쓸려고.

 

일찍이 비로자나의 정상을 뛰어넘었노라.(曾踏毘盧頂上行.)

- 모든 사람들은 왜 이러하질 못할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고 말았군.

그대는 어떻게 뛰어넘겠는가?

 

철퇴로 황금 뼈를 쳐부수니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 있겠는가?(鐵鎚擊碎黃金骨, 天地之間更何物.)

- 아득한 사해에 지기(知己)가 적구나.

온몸에 짐을 짊어졌다.

모래를 뿌리고 흙을 뿌린다.

 

삼천찰해(三千刹海) 침침한 밤에(三千刹海夜沈沈,)

- 높이 쳐다보아라.

제 영역을 꼭 잡고 있구나.

그대는 귀신 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누가 창룡굴(蒼龍窟)에 들어갈지 모르겠네.(不知誰入蒼龍窟.)

- 서른 방망이에서 한 방망이도 빼지 말고 때려라.

염송했구나.

알겠느냐?

쯧쯧! 여러분의 콧구멍이 설두스님에게 뚫려버렸다.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잘못 인식 하지 말라.

 

[評唱]

한 나라의 국사 또한 억지 이름, 남양 홀로 명성을 떨쳤다는 것은

하나같이 참으로 찬탄한 듯하다.

듣지 못하였느냐, “지극한 사람至人은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말을.

국사라 부르는 것도 억지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국사의 도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이처럼 훌륭하게 사람을 제접하니,

오로지 혜충국사만이 작가답다고 인정한 것이다.

 

당나라를 떠받치는 참다운 천자,

일찍이 비로자나의 정상을 뛰어넘었노라는 것은,

안목을 갖춘 납승의 견해라면

비로자나의 정상을 뛰어넘어야 십신조어(十身調御)를 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부처를 조어라 말하는 것은 부처의 십호(十號)가운데 하나이다.

한 몸이 십신(十身)으로 변화하고 십신이 백신(白身)으로 변화하여,

··억의 몸까지 이르시지만 그 근본은 한몸[一身]일 뿐이다.

 

이 송은 설명하기 쉽지만

뒤의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인식하지 말라고 노래한 송은,

물로 씻을 수조차 없어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철퇴로 황금 뼈를 쳐 부순다는 구절은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잘못 인식하지 말라는 뜻을 송한 것이다.

설두스님은 각별히 그를 찬탄하여 황금 뼈를 철퇴로 일격에 쳐부숴버렸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 있겠는가라는 것은,

바로 청정하고 훌훌 벗고 텅 비어 말끔하여야만 결코 한 물건도 없게 되니,

이게 바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천찰해의 침침(沈沈)한 밤과 같다.

삼천대천세계 향수바다[香水海] 가운데 가이 없는 세계가 있고,

그 한 세계에 하나의 바다가 있는데,

바로 고요한 깊은 밤이 되어 일시에 천지가 고요하고 맑으니,

말해보라, 이는 무엇일까?

절대로 눈을 감고 이를 알려고 말라.

이처럼 이해했다면 곧 독 바다[毒海]에 떨어지게 된다.

 

누가 창룡굴에 들어갈지 모르겠네라는 것은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니 누구일까?

말해보라.

여러분의 콧구멍이 일시에 설두스님에게 뚫려버렸다.

 

 

(동국대교수 성본스님 강설)

 

99칙 숙종황제의 십신조어(十身調御)

마음에 자기나 부처라는 흔적도 없어야 정상 초월

 

<벽암록> 99칙은 숙종 황제와 혜충 국사와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숙종 황제가 혜충 국사에게 질문했다. ‘어떤 것이 십신(十身) 조어(調御) 입니까?’ 혜충 국사가 말했다. ‘단월(檀越)이여!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초월해 가시오.’ 숙종 황제가 말했다. ‘과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혜충 국사가 말했다.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인정하지 마시오.’”

肅宗帝問忠問師如何是十身調御. 國師云檀越踏毘盧頂上行. 帝云寡人不會. 國師云莫認自己淸淨法身.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3, <전등록> 5권 남양혜충국사전에 전하고 있는데, 본래 두 가지 문답을 여기서는 하나의 선문답으로 정리하고 있다. 혜충 국사와 숙종의 대화는 <벽암록> 18칙 무봉탑에도 싣고 있다. 혜충(慧忠, ?~775) 국사는 육조혜능의 선법을 계승하였고, 숙종 황제는 당나라 현종(玄宗)의 제3 왕자로 황태자 때부터 혜충 국사에게 참선을 배워 상당한 식견을 갖추었기에 <조당집>에는 혜충 국사와 나눈 여러 선문답을 수록하고 있다.

 

숙종 황제가 혜충 국사에게 어떤 것이 십신(十身) 조어(調御) 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조당집>에는 이 질문에 혜충 국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황제에게 아시겠습니까?’ 라고 묻고 있다. 황제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국사는 노승의 물병이나 갖다 주시오.’라고 말하여 하나의 대화가 끝나고 있다.

 

천차만별의 응화신을 나투는 것이 부처이기에 십신(十身)이라고 하며 말을 잘 훈련시키는 듯이 자유자재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의미로 조어장부

 

혜충 국사는 자신의 몸으로 부처의 십신(十身)과 십호(十號)의 하나인 조어장부(調御丈夫)인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황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부처의 십신(十身)60<화엄경>42권 이세간품에 설하고 있는데, 미혹함과 깨달음에도 집착하지 않고 진실한 깨달음을 완성하여 중생세계에서 활동하기에 무착불(無着佛), 원력과 서원의 힘으로 이루었기에 원불(願佛), 여러 가지 수행의 보답으로 아름답게 부처의 모습을 구족하여 업보불(業報佛), 청정한 정신으로 많은 선의 근본을 지니고 그 힘으로 깨달음을 완성하였기 지불(持佛), 항상 열반의 경지에 머물기 때문에 열반불(涅槃佛). 불신(佛身)이 널리 법계에 두루 충만하기에 법계불(法界佛). 부처가 일체 중생의 마음에 두루하며,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이기에 심불(心佛). 항상 삼매의 경지에 주하기에 삼매불(三昧佛). 사물의 진실 본성을 분명하게 나투기에 성불(性佛). 마음대로 교화하기에 여의불(如意佛)이라고 한다.

 

80<화엄경><화엄경공목장> <석씨요람> 등에도 언급하고 있는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살이 원력을 세우고 수행을 완성하여 구경의 불과를 체득한 덕을 열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이름 붙인 것인데, 부처의 십신(十身)은 일불신(一佛身)에 십신(十身)이 구족한 비로자나라고 하고 또한 시방삼세에 두루하기에 주변법계신(周遍法界身)이라고 한다. 또 부처님의 십호중의 하나인 조어(調御), 조어장부는 <불설십호경>타심(他心)을 잘 다스리는 것을 조어장부라고 한다.”고 설하는 것처럼, 시방삼세의 다양하고 수많은 중생들의 마음을 잘 살펴보고 근기에 맞추어 교화하여 제도하는 능력을 갖춘 대장부를 말한다.

 

천차만별의 응화신을 나투는 것이 부처이기에 십신(十身)이라고 하며, 말을 잘 훈련시키는 것 같이 자유자재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의미로 조어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황제의 질문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혜충 국사는 단월(檀越)이여!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초월해 가시오.”라고 대답했다. 국사는 황제께 폐하라고 부르지 않고 단월이라고 불렀다. 혜충 국사가 황제의 스승이며 스승이라는 훌륭한 안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단월은 범어로 dana-pati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시주(施主)라고 한다. 그리고 비로정상은 법신이 비로자나불의 두상(頭上)이다. 혜충 국사가 황제께 말한 것은 단월께서 자신이 십신조어의 부처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데, 그러한 경지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십신(十身) 조어(調御)의 본체인 비로자나불의 정상까지 초월하여 향상일로(向上一路)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라는 의미이다. 즉 선에서 말하는 백척의 장대 끝에서 머무르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을 체득한 열반적정의 경지에 이르기 어려웠기에 그 곳에 머물면 열반의 경지가 곧 자신을 죽이는 집착의 세계로 전락되고 말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을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계에도 머무름이 없도록 해야 자유롭게 지혜작용을 활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 마음을 비우도록 설하는 공의 실천은 마음을 어떤 경계에도 머무름이 없도록 하는 무주(無住)의 실천이다. 번뇌 망념을 텅 비우고 근원적인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향상일로(向上一路)라고 한다. 즉 중생심의 차별세계에서 불심의 절대세계로 전환시키는 것인데, 선에서는 망념을 자각하고, 불성을 깨닫는 돈오견성이라고 한다. 본래의 청정한 마음(불성)이 되어야 반야의 지혜로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자유롭게 잘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숙종 황제는 과인은 국사가 말씀하신 비로자나 부처의 정상을 밟고 초월해 가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황제가 짐()이라고 하지 않고 과인(寡人)이라고 한 것도 혜충 국사를 스승으로 모시는 입장이며, 덕이 적은 사람이라고 겸손한 말이다. 그래서 혜충 국사는 자기의 청정법신이 있다고 인정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즉 비로자나불의 정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설했다.

 

청정법신은 비로자나 법신불이다. 법신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으로 요약되는 불법의 지혜와 인격을 완전히 체득하여 일체 만법과 하나가 된 지혜의 당체이다. 보신은 불법의 지혜와 인격이 구족된 부처의 능력을 구비한 것이며, 화신은 불법의 지혜를 많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여 깨달아 해탈을 얻도록 교화하는 것인데, 부처의 삼신(三身)이 달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부처의 기능과 작용을 삼신(三身)으로 나눈 것이다.

 

의학을 완전히 통달해야 의사의 자격을 갖추게 되고, 의사가 되어야 의학의 지혜와 기술을 환자에게 의술로 베풀 수 있는 것이다. 황제는 나 자신이 청정법신불이며, 나 이외에 부처란 없다는 입장이었기에 국사는 자신이 부처고, 십신조어의 청정법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자신이 청정법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와 법신이라는 두 가지 사물을 인정하는 이원론(二元論)에 떨어진 것이며, 진정한 법신(본래면목)을 체득한 것이 아니다. 자기도 비우고, 부처라는 생각도 비운 그 당처에 위대하고 참된 자기가 현성하게 되며, 일체 처에 두루하는 청정법신불이 현전하게 되는 것이다.

 

원오는 혜충 국사는 말이 많았지만(갈등) 역시 국사로서 친절한 지도로 깨달음을 체득할 수 있는 법문이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평창에 동산양개 선사가 학인을 지도하는 방편으로 일체처에 자취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새의 길(鳥道)을 인용한 것처럼, 마음에 자기나 부처라는 흔적도 없어야 비로정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한 나라의 국사 또한 억지로 붙인 이름.” 혜충국사는 남양 백애산에 40년간 은거하였는데 숙종황제가 초청하여 국사로 모셨지만,본분상에서 볼때 황제나 국사라는 이름도 없다 임시방편으로 붙인 이름이다.

 

혜충국사 홀로 훌륭하게 명성을 떨쳤구나.” 세상에 국사나 왕사, 선사나 장수라는 작위를 부여한 사람은 많지만, 혜충국사는 최고로 훌륭한 명성을 천하에 떨쳤다. 그 이유는 혜충국사는 숙종과 대종(代宗).

 

대당나라의 참다운 천자를 도와서.” 세속의 훌륭한 황제가 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깨달아 참된 법왕의 천자가 되도록 하였다.

 

일찍이 비로자나 정상을 밟고 넘어가도록 했네.” 국사는 숙종 황제를 지도하여 비로자나 법신불을 초월하여 향상일로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철퇴로 황금 뼈를 쳐부수니.” 황제가 소중하게 생각한 황금법신불의 뼈 골수까지 쳐부순 국사의 말씀은 철퇴와 같네.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 있겠는가?” 천지간에 한 물건도 없는 청정법신도 자기도 일체 인정하지 않은 경지다.

 

삼천(三千)의 육지와 바다(刹海) 고요한 밤.” 한 물건도 없는 본지풍광의 조용한 세계,

 

누가 창용굴(蒼龍窟)에 들어갈지 모르겠다.” 용의 턱에 있는 여의주를 얻기 위해서는 창용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참된 불법을 체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경인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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